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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강해 37 삶의 우선 순위

눅 10:38-42

서은철 목사2022-07-17230

20220717

 

삶의 우선순위(10:38-42)

 

 

 

분주함은 중요한 것을 잊게 만든다. 너무 분주했던 마르다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있던 마리아를 비난했다. 더 큰 문제는 마르다가 예수님까지 비난했다는 것이다(10:40). 마르다는 주님을 꾸짖을 정도로 자기의 위치를 잊어버렸다. 그녀는 음식을 준비하는데 몰입한 나머지 그 음식을 누구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렸다. 본말전도(本末顚倒).

 

우리도 종종 이런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주님이 중요하고, 교회가 중요하고, 성도들이 중요한데, 자꾸 자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치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애쓴 율법교사와 같이 말이다(10:25-37).

 

네 목숨과 힘과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할 만큼 율법교사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려 하였던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온갖 일로 분주한 마르다의 모습은 율법교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율법 교사나 마르다나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온갖 애를 다 썼지만 복음의 핵심, 복음의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복음의 핵심에 집중했는데 마르다는 그렇지 못했다. 무엇이 마르다를 방해한 것일까? ‘자기 열심’, ‘자기 의’, ‘자기를 의롭게 보이고자 하는 교만한 태도였다.

 

또 한 가지 마르다를 방해한 것이 있다. 그것은 마르다가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었다. 예수님 시대에 여성은 가르침을 받는 자리에서 남성과 함께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마르다가 볼 때 그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부탁해 마리아를 부엌으로 오게 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여성도 다른 남성 제자들처럼 예수님 발치에 앉아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때로는 세상과 시대에 갇혀 만들어진 우리의 편견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그 모든 편견을 뚫고 사람을 자유케 한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상관없이 값없이 주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들을 때 구원케 하시는 주님의능력을 맛볼 수 있다.

 

경북대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다니엘 형제가 지난주에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교수로 가게 되는 일이 결정되었다. 미시간 주립대학은 미국 최초의 농업대학이면서 노벨상을 무려 20명이나 배출한 미국 최고의 농업대학이다. 그런데 그런 업적보다 더욱 인상적인 업적은 이 대학이 1899년 최초의 흑인 학생의 입학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인종차별이 심심치 않게 자행되고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이 대학은 과감하게 흑인학생들을 받아들였다. 에이브럼 링컨을 비롯한 당시 미국 그리스도인들이 주창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이었다. 복음은 우리를 자유케 하고 모든 편견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낸다.

 

마르다와 같이 온갖 섬김의 일로 염려하고 분주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행한 일 없이 그저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마리아의 믿음의 모습은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못마땅한 일로 보일지 모른다. 그래서 마르다는 마리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비난하기를 저도 와서 나처럼 열심히 주를 섬기는 일에 참여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주의 은혜와 사랑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마리아의 믿음을 최상의 선택이라 하시고 그가 택한 이 최상의 것을 결코 빼앗기지 않으리라 말씀 하셨다. 그 이유는 복음의 핵심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참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신과 세상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마르다나 율법교사처럼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분주하게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가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복음의 핵심을 듣고 자신을 가두고 있는 온갖 편견과 얄궂은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리아처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확립해야겠다. 주님의 복음이 나를 살리고 내 가족을 살리고 이 세상을 살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처럼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사모하는 일에 더욱 더 집중해야 한다. 주님과 복음에 집중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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